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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파의 대두와 성리학 발달.
사림파는 15세기의 사학파에 연원을 두고 형성되었다. 사학파의 학풍은 `소학`과 `가례`를 중심으로 성리학 이념의 실천에 치중하는 것이었으며 향촌의 중소지주층인 사학파들은 15세기부터 `주자가례`의 시행, 사창의 보급 등을 통하여 성리학적인 사회질서를 구축하여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림파는 15세기 말 성종 연간에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누적된 사회모순과 훈구파의 비리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초기의 일방적인 중앙집권화정책과 훈구파 대신-수령으로 연결된 침탈이 일반 농민은 물론 향촌지주층의 존립기반마저 위협하였다.
한편 15세기 말부터는 과전법체제가 붕괴된 후 토지에 대한 수조권적인 지배가 무너지고 소유권에 의한 토지집적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사림파는 성리학을 중앙정치의 파행성과 향촌사회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사림파들은 중앙정치에서는 `대학`에서 제시된 도덕정치를 구현하고, 향촌사회에서는 `소학`에서 제시된 향약적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사회모순을 극복하려 하였다. 16세기에 발달한 성리학은 사회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