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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랑스 혁명과 반동
1830년 프랑스의 7월혁명은 비인체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과격한 당파
의 수령인 샤를르 10세의 반동정치와 자유주의의에 대한 자의적인 탄압은 자유주
의 언론에 주도된 민중봉기 곧 7월 혁명을 초래했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전
유럽으로 크게 고무된 벨기에는 독립하고 스위스에서는 자유주의체제가 수립되었
다.
그러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지에서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자유주의 내지 민
족주의운동의 확산은 저지되었다. 그 원인은 지식인 등에 한정된 자유주의가 민
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사회경제적 후진성으로 부르즈와지의 세력이 미약
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7월혁명으로 탄생된 프랑스 7월왕정은 소수의 부르주아지에 의해 주도된 자유
주의체제였다. 여기서 산업혁명도 진전되어, 증대된 노동자집단은 결합을 통해 정
치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탄압적이었고, 영국과의 경쟁에서는 소
극적이었던 7월왕정은 광범위한 불만을 야기했다. 여기에 1847-1848년의 경제위
기와 1848년 2월의 선거권 확대 요구로 사회가 불안한 가운데 정부의 강경대응은
2월혁명을 초래해, 제 2공화정이 탄생했다.
2월혁명에는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한 급진세력이 참여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및 노동권이 보장되고, 실업자구제를 위한 국립작업장의 폐쇄를 계기로 `6월폭동
을 일으켰으나 군대의 힘으로 진압 되었다. 오히려 급진세력에 대한 보수적인 지
배층과 농민 등의 경악은 정체불명의 루이-나폴레옹을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시
켰다. (48년 2월)
프랑스 제 2공화정의 초대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은 보수파와 급진파의 대립 및
공화주의자 내부의 갈등을 이용한 쿠데타(51년 12월)로써 독재권을 장악하고 급기
야 국민투표에 의해 나폴레옹 3세가 되어 제2제정을 수립했다.(52년 12월) 나폴
레옹 3세는 농민의 얕은 정치의식과 군대의 복종을 배경으로 한 `보나파르티즘`이
라는 독재정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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