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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아미타정토 신앙
정토란 `청정한 국토`의 줄임말로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미타부처가 주재하는 서방의 정토를 아미타정토라 하며, 흔히 극락(極樂)이라 부른다. 극락은 윤회의 사슬을 끊은 궁극적인 이상향이다. 아미타 정토신앙이란 아미타부처의 도움을 받아서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신앙형태를 말한다.
아미타정토 신앙은 7세기 중엽에 신라사회에 등장한 것으로 왕경에 거주하던 하급귀족이나 평민들 중에서 골품제도의 모순으로 인하여 몰락해서 왕경에 가까운 지역으로 낙향해 간 사람들 사이에서 현세를 부정하고 내세를 동경하는 풍조에서 발생하였다. 신라 중대에 들어가 지배적인 신앙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으로 중대왕실의 후원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일반민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권강화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일반민들은 아미타정토신앙에 매료되었는가?
정통의 내용, 왕생인의 자격, 왕생의 방법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 정토교학에 비해 정토의 문호를 개방하려는 추세에 있었음이 밝혀졌다. 누구나 손쉽게 아미타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반민들에 대해 상당한 흡인력…
발전하고 운동, 변화한다고 보았다. 『대승기신론』에 의하면 일심은 두 부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다. 원효에 의하면 진여문은 발생도 소멸도 없으며, 증감도 차별도 없는 절대적 본체인 일심의 본질적 측면을 의미한다. 생멸문은 발생과 소멸이 있으며, 증감·차별이 있는 일심의 상대적이고 현상적인 측면이다. 이러한 일심의 두 모순적 측면인 진여문과 생멸문의 관계를 ꡒ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이다.ꡓ라고 하였다.
인도의 대승불교에서부터 발생하였던 중관과 유식의 대립을 극복하는 문제는 신라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불교계의 현안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원효의 불교는 중국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불교는 곧 중국에 전해져서 법장이나 이통현(李通玄), 그리고 그 뒤의 징관(澄觀)등에게 영향을 주어 중국 화엄종의 성립과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화쟁을 통해 원효가 궁극적으로 건립하고자 한 사상인 기신론사상은 일심사상이며 그것은 곧 여래장사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원효가 기신론의 일심사상을 여래장사상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일심사상을 주목하는 경향이있다.
한편 원효사상 가운데 그의 대중교화활동과 밀접히 관련된 계율사상과 정토사상도 1960년대 이후 학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우선 원효의 계율 관련 저술을 분석하여 대중교화활동을 위해 대승보살계를 중시하였음이 밝혀졌다. 또 원효의 정토교학 관련저술을 분석하여 원효가 미륵정토보다 미타정토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미타정토로 왕생할수 있는 자격을 가급적 완하하고 왕생의 방법도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7세기는 신라사회와의 문맥 속에서 원효의 생애를 복원하고자 한 시도는 주로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 졌다.
참고문헌
『한국사시민강좌 10』 김두진, 1992
『한국사 (4)』 김영미, 1994 한길사
『한국역사입문 (2)』 남동신, 1995 풀빛
『신라사상사연구』이기백, 1986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