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렇듯 신라와 당군이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자 의자왕은 세파로 나뉘어진 사오십명의 적자서자들의 분분한 주장에 왕자의 말을 다 허락하여 행하게 한후 도망하였고 백제의 군사들은 오합지졸이되어 서울이 함락되었으며, 의자왕은 자결하려다 실패하고 태자들과 함께 당의 포로가 되어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였다.
한편 소정방은 기회를 틈타 신라를 쳐 뺏으려는 음모를 세웠으나 신라의 경계함을 알고 중지하였다.
백제는 중경(중경)과 상경(상경)이 왕자의 투항으로 망하고 그밖의 삼경(삼경)과 각고을들도 모두 적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민들이 격렬하게 일어남으로서 맨손으로 적병과 싸우는 다물(다물)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제5장 백제 의병의 봉기
이렇게 나라가 망하게 되자 초야의 옛 신하와 의사(의사)들이 망국의 화를 구하고자 각지에서 분연히 일어났다.
당시 백제의 의병(의병)은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백제의 동부, 서부, 중부로 나눌 수 있다. 서부 의병대장 부여복신(부여복신)은 서부은솔(서부은솔)이 되어 임존성을 견고히 수리하고 유사시 대비에 주력하였으나 임자(임자)의 참소로 벼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의장왕이 붙잡히고 상경 곰나루등이 함락되니 성안의 군사들로 다시 추대되어 항전하였는데 강서(강서)의 흩어진 군사를 모아 진현성을 회복하니 당의 웅진도독 유인원이 장병 1천이 침공하자 불의에 습격하여 전멸시키고 구원병으로 나선 신라의 군사들 또한 전멸시키고 성으로 돌아와 지켰다.
다시 신라의 대군이 성을 포위하고 3일에 걸쳐 공격하였으나 많은 사상자만 내고 후퇴할 때 수많은 장졸을 베고 군수품을 빼앗고 김흠순의 구원병을 크게 깨뜨려 다시는 신라의 군사가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복신의 명성이 천하에 떨쳐 백제의 여러 성과 고을을 귀부시켰으며 고구려와 일본도 복신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