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예수 그리스도’라는 환영을 위하여 육지와 바다를 여행하고 다녔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복음을 다메섹 도상에‘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았다는 바울 자신의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계시하심을 통하여 받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바울의 마음이 그 순간까지 신학적으로 완전히 백지 상태였다는 의미는 아니다.바울은 메시아 신앙, 율법과 ‘지혜’의 개념 및 유대교와 원시 기독교의 케리그마의 사상과 개념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선교의 장에서 헬라적인 사상과 개념들과도 친숙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종교사적 자료들이 바울을 기독교 신자로 만든 것도 아니요, 바울의 신학을 창출해 낸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이 바울의 신학 안으로 용해되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촉매가 필요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높임받은 메시아로, 주로, 아들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던 산 체험이라는 촉매가 있을 때만이 이와 같은 자료들은 바울의 기독교 신학 속으로 녹아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다메섹의 계시와 같은 진정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기독교 신학을 위한 성경 해석상의 근본 개념과 사상들을 위하여 위의 모든 종교사적 자료들을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위의 자료들은 바울에게 약간의 근본개념들과 관념들-그것을 가지고 바울의 다메섹 체험을 설명하여 그의 신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의 계시라는 참 체험이 없었다면 바울은 그의 복음에 대한 흔들림이 없고 생생한 확신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복음 자체를 가지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