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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후반, 이 시기의 국제관계는 발칸반도에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유럽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열강은 구미세계 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조선을 거점으로 해서 군사력을 강화했던 일본은 이 틈을 이용해 중국 대륙에 손을 내밀었다. 일본은 1915년에 연합국을 지지한다는 구실로 독일이 산둥성에서 갖고있던 권익을 차지하고 조계를 공격하였으며, 또 ‘대중국 21개조 요구’를 베이징 정부에 들이대었다. 일본은 이 무렵부터 중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17년에 10월 혁명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사회주의 소비에트가 수립되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에 걸쳐 중국은 이 두 가지의 국제적인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연해의 각 도시에서는 반일 기운이 높아졌고, 동시에 베이징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신문화운동(광의의 5.4운동)은 점차 사회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띠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는 독일이 중국에서 갖고 있던 이권을 반환하지 않고 일본으로 양도할 것을 승인하였다. 이에 분개한 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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