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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유년시절가 그림 입문
겸재는 1676년 1월3일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단촐한 양반집 자제로 어려서 스승 김창흡밑에서 배웠는데, 김창흡은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그가 추구한 시의 세계는 진경시 였으니 겸재의 진경산수는 스승의 예술정신을 그림으로 나타낸 듯 하다. 겸재는 처음에는 학문에 퍽 열중했다고 하는데 이런 겸재가 어떤 계기로 그림에 입문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진바가 없다. 그러나 겸재가 화법을 익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병연의 영향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시에서 대가가 되어 당대에 ‘시에서 이병연 그림에서 정선’으로 불리웠다. 겸재는 중국화의 진수를 자득 해 갔는데 이와 같은 철저한 화법을 거친 다음엔 거친 듯 스스럼없는 개성적인 필법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금강행과 [신묘년 풍악도첩] (20.30대)
20-30대에 그는 결혼을 항 두 아들을 낳고 두 차례에 결쳐 금강산으로 떠난다. 그의 초년작인 ‘신묘년 풍악도첩’은 그의 노년작과 비교하면 같은 화가의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새로운 시도의 초년작이 갖는 한계이자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처음 시도한 작품이기도 한 이 초년작은 회화식 지도처럼 출발 했지만 그는 결국 진경산수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하며 대기만성형의 화가로 남는다.
또 이 그림에서 겸재의 여유와 유머의 표현이 화면상에서 나타나는데, 벼랑끝 모퉁이 돌아가는 부분에 까만 점선 세가닥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막 고갯길을 돌아선 나귀의 뒷다리와 꼬랑지가 허리춤 두로만 보이는 모습이다(p215).또 이따금 바위등을 표현할 때는 사자바위 부처바위 거북바우등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등 이런식으로 겸재는 보일 듯 말 듯 집어넣는 뛰어난 유머감각이 있었다. 이는 화가 겸재의 천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