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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국 수당 시대
위(위) 촉(촉) 오(오) 삼국의 정립에서 진(진)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남북조(남북조)의 대치로부터 수(수) 당(당)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간(220 907) 중국은 기본적으로 반은 분열되고 반은 통일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분열에서 통일로 향하는 상황은 중국의 봉건사회가 진(진) 한(한) 이래의 공고화에서 발전과 흥성으로 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위 촉 오 삼국이 정립한 국면은 220년부터 280년까지 60년간 지속되었다가 최후에 사마(사마)씨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리하여 진(진)왕조가 건립되었으며 도읍을 낙양(낙양)에 정하였다. 이로부터 동한 말기 이래로 성행했던 군벌들의 혼전 국면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서진(서진)의 통치집단은 극도로 부패하여 내부적으로는 권력쟁탈이 매우 첨예하게 일어났다. 따라서 불과 50년만에 바로 `팔왕의 난(팔왕지란)`이 발발하여 이후 장장 300년간에 걸쳐 전란과 분열이 새롭게 시작됨으로써 황하유역, 특히 중원지구(중원지구: 지금의 하남 산서 섬서 일대)는 극심한 재난을 겪었다.
316년에 서진(서진)이 멸망하고, 317년에 사마예(사마예)가 건업(건업: 지금의 남경)에서 황제…
분열되고 정치가 부패하여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번진(번진)이 할거하였으며, 서기 907년에 당(당)왕조는 결국 멸망하였다.
(6) 오대 송원
907년부터 오대십국(오대십국)의 분열 국면이 거의 60연간 지속되었으며, 960년에 중국은 다시 통일을 이룩하면서 송(송)왕조가 건립되었다. 이후로 중국은 비록 계층간의 갈등과 민족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계속하여 왕조가 교체되긴 하였지만 이전과 같은 그러한 대분열의 혼란 국면은 발생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많은 왕조들의 흥망이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국은 이미 확고한 통일의 기초를 다짐으로써 더 이상 동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대십국(오대십국)으로부터 송(송) 요(요) 금(금)서하(서하) 시기의 한족(한족)과 기타 민족의 융합을 거쳐 원(원)왕조에 의한 통일이 실현되기까지는 약 460년이 걸렸다. 이 기간에 중국의 봉건사회는 비록 당(당)왕조와 같은 번영과 부강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농업 수공업 상업 과학 문화 국제무역 등의 방면에서 모두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의 경제 중심은 이미 황하유역에서 장강유역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많은 외국상인들과 여행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탈리아(의대리) 베니스(위니사) 상인 마르코폴로(마가파라)는 일찍이 중국의 광대한 지역을 유람하였는데, 그의 여행기 속에는 당시 중국의 상공업이 번영한 모습이 구체적이고도 생동감있게 묘사되어 있다. 송(송)·원(원) 시기에는 민족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대립했던 시기이다. 송(송)왕조 시기에 중국 북부와 서부의 소수민족은 매우 강대해져 요(요) 금(금) 서하(서하) 정권이 연속적으로 건립되면서 송(송)왕조를 끊임없이 침범하였다. 서기 1127년에 여진족의 금(금)나라가 송(송)의 수도 동경(동경: 지금의 개봉)을 공격하여 송나라의 황제를 사로잡게 됨으로써 북송(북송)은 멸망하였다. 같은 해에 송나라의 황족 조구(조구)는 정권을 다시 세워 도읍을 임안(임안: 지금의 항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