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개개인들의 영원한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핵심 이유이다. 이 전통적인 입장은 초기 교부들과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 종교 개혁가들의 최우선적 관심사였다. 이것은 다시 세부적으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주권적이다”(예정론적 칼빈주의자들)라는 입장과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한다.”(부정적 입장의 알미니안 주의자들)는 입장,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조화도리 수 없다.”(중도적 합리주의자들)는 입장으로 나뉘어 진다.
하나님의 목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느냐가 핵심 이슈다. 예정론적 해석에 반발해 이 그룹은 9-11장을 시간 속의 역사와 구체적인 선택에 국한시킨다. 영원한 뜻이나 개개인들의 운명과 무관하게 바울은 구원사에서 차지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집단적 역할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 백성인 교회가 하나님의 옛 백성인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핵심 이수이다. 9-11장은 일종의 변증적인 글로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간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왜 유대인이 불신앙 가운데 남아 있는가에 관한 바울의 표준적 설명이다. 교회와 이스라엘은 한편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있어 불연속선상에 서 있다.
로마서 9장-11장까지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주제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바울의 서두 명제에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9:6). 바울은 앞서 말한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슬픔(9:1-5)이 선포된 하나님의 뜻에 어떤 실효성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신속하게 말을 바로잡는다.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의 복음에 대한 유대인의 반대를 꼬집은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3:2) 사람들의 거부 행위는, 복음이 거짓임을 암시하는 것인가? 그 거부 행위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약속을 폐지하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무효화하는 것인가? 이 견지에서 볼 때 9-11장은 1-8장에서 규정된 복음 교리와, 유대인의 불신앙으로 인해 일어나는 큰 난제, 이 양자를 조화시켜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