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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우선 유학이 변해야 한다.
박재원은 그의 책에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특이한 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다룬 생명력 있는 유학이나 오늘날 죽어가는 유학이나 둘다 같은 유학이다. 한대 경학이 가졌던 적응력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음은 100년 전 서양에서 새로운 사상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 중국의 유학자들이 취했던 태도를 살펴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마지막 대유(大儒) 캉유웨이는 그의 저서 『대동서(大同書)』(1935)에서 여성과 남성이 완전히 동등한 사회를 꿈꾸었고 한발 더 나아가 장유유서(長幼有序) 이념까지 완전히 개변하자는 주장까지 하였다. 모든 인간이 정신적인 윤회에 의해 태어나므로 나이 차이는 우연에 불과한 것이고 이를 가지고 특별히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캉유웨이로부터 7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유유서 이념을 개변하자는 주장을 한다면 유교적 질서에 젖어 있는 부류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가끔은 존칭어 사용과 같은 나이를 중심으로 한 예법이 민주적인 의견 전달에 방해가 됨을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유림은 이런 점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1968년을 기점으로 학생과 선생이 서로를 지칭하며 ‘당신’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도 10년 차이는 친구라 하여 평어를 쓰는 일이 흔히 있었지만 오늘날 유학은 현실 안주에만 집중할 뿐 사회 변화를 관찰하며 유학을 적극적인 해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선진 유학과 한대 경학은 같은 유학의 범주에는 속하지만 다른 점이 많다. 송대 성리학 또한 이들과는 다르다. 각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적극적인 자기 변신을 시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전통 시대의 유학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유학은 많은 점에서 부족하다.
참고문헌
시어도어 드 배리, 『중국의 ‘자유’ 전통』, 이산, 1998
박노자·허동현, 『우리 역사 최전선』, 푸른역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