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머리말
청은 만주족이 세운 왕조였지만 한족의 명보다 더욱 많은 문화정책을 추진하여 학술과 문예가 크게 융성하였다. 특히 강희, 옹정, 건륭 시대에는 중국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져 문화 발전에 깊은 열의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또 내면적으로는 중국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원조와는 달리 중국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중국의 사회관습, 전통문화와 도덕을 존중하고 황족과 귀족들 자신이 중국인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한자로 글을 지었다. 이 때문에 청초에는 청에 대항하던 명조의 유신들과 지식인들로 점차로 청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청에 편입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이 청의 통치는 중국인의 회유 목적으로 문화정책을 추구하는 면이 강했는데 이와같은 문화정책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학술 부흥을 목표로 한 대규모의 편찬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강희제 때에는『명사』를 비롯하여『강희자전』,『고금도서집성』등이 편찬되었고 건륭 시대에는『대청일통지』,『사고전서』가 편찬되는 등 학문적 분위기가 성숙되어 갔다. 그러나 당시 학계를 살펴보면 전통적 유학은 명대 계속해서 부진했고 한 시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