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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문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우선 시에 관하여 그는 시가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면서 그것이 사람의 깨끗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하였다. 다산이 말하는 참된 시란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를 옹호하고, 어지러운 사회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가 도에 근본을 둔 인륜시와 날카로운 사회비판의 사회시를 많이 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그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시를 ‘간림(諫林)’이라 하여 ‘간언이 담긴 언어’라고 보았다. 특히 그는 『시경(詩經)』이 백성을 교화하는 노래가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의 비판적인 말’이 담겨진 책이라 하였다. 이는 그간의 문인들이 파악한 『시경』에 대한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사회악에 대한 풍자와 고발을 통하여 사회를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젊은 시절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백성들의 현실에 눈을 뜨면서 강해졌다. 그리고 유배지 강진에서 백성들의 참혹한 삶과 함께하면서 이러한 의식들은 시로 형상화되었다. 한편, 다산의 문학론에서 중요한 것은 소위 ‘자주적 조선시’를 선언한 주체적 문학정신이다.
이러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다산은 일찍부터 시를 지을 때 중국의 고사를 찾아 쓰는 일에서 벗어나『삼국사기』니 우리의 고문헌, 그리고 각 지방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소재로 슬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 풍속과 역사 속에서 시적 소재를 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다산의 선배들인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