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머리말
중국 역사에 있어서 문자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였다. 당시에는 그림이나 도형으로 간단히 자기 의사표현을 하거나 또는 도기(陶器)나 벽화(壁畵) 등에 생활에서 보던 간단한 동·식물 등의 모습을 새겨 넣기도 하는 수준의 모습이었는데, 이런 추상적인 형태들이 나중에 한자(漢字)의 모습으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에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한자의 옛 모습은 갑골문(甲骨文)과 청동기명문(靑銅器名文)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이 갖는 사료로서의 가치, 또 당시의 사회상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문
1) 갑골문(甲骨文)
상(商)에 대한 기록은 과거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의 기록이 유일하다시피 하여 상대(商代)에 관한 연구는『사기』에 의존해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때문에 『사기』에서 보이는 연대를 추정으로만 생각하고 있어 문자기록이 출토되지 않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1899년 하남성(河南省) 북경(北京)에서 용골(龍骨)이라 불리우는 약방의 처방약(處方藥)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인 갑골문으로 판명되면서 상대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 갑골문의 기원(基源)과 기록 내용
상나라에서는 광범위하게 갑골을 사용한 기명(器皿)을 제작하거나 장식을 하였고, 특히 점복(占卜)과 제사(祭祀) 및 서사재료(書史材料)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복에 사용하는 갑골이나 수골(獸骨) 등은 상대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에서 수골과 갑골이 발견되긴 했지만 이는 불로 지진 흔적만이 보일 뿐 문자가 없었다. 상대의 갑골문은 대체로 정복문(貞卜文)과 기사문(記事文)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대부분 제사·전쟁·수렵·여행·질병·기후·길흉 등과 인사(人事)와 관련한 기록이었다. 상나라 왕이 어떤 일을 시행하기 전 복점을 통해 길흉을 점친 후 갑골 위에 그 결과를 기록했는데 갑골문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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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Buckley Ebrey 著, 이동진·윤미경 譯『케임브리지 중국사』시공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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