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마침내에는 고향인 경주 현곡면 구미산(龜尾山)에 위치한 용담정(龍潭亭)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종교 체험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하여 대신사는 한울님으로부터 세상 사람들을 구한다는 ꡐ영부(靈符)ꡑ와 세상의 사람들을 가르칠 ꡐ주문(呪文)ꡑ을 받기도 한다. 이때가 포덕 원년(1860)인 경신년 4월 5일이다. 따라서 천도교에서는 이 날을 천도교 원년(元年)으로 삼아 ꡐ천일기념일(天日紀念日)ꡑ로 기리고 있다. 기존의 모든 종교들은 창도자의 탄생일을 기준 삼아 그 종교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 비하여, 천도교는 대신사가 득도(得道)를 한 그 날을 기준 삼아 가장 큰 기념일로 삼고 있음이 독특하다고 하겠다.
대신사는 득도를 한 이후, 거의 1년에 가까운 기간을 수행과 수련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수행 기간을 거친 후 포덕 2년(1861) 신유년 6월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포덕(布德)을 시작하였다. 양반도 천민도 없이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새로운 가르침은 당시 새로운 삶의 질서를 꿈꾸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받게 된다. 그래서 대신사가 머무는 경주 용담정(龍潭亭)에는 연일 도에 들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포덕과 세상 사람들의 많은 관심으로 인하여 대신사는 경상도 인근의 유생(儒生)들의 지목(指目)과 관청의 탄압을 받게 되고, 포덕 2년 11월에는 마침내 용담을 떠나 전라도 남원(南原) 교룡산성(蛟龍山城) 안에 있는 작은 암자 은적암(隱跡庵)으로 피신하여 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이 곳 은적암에서 대신사는 동학의 중요 경전인 「논학문(論學文)」·「권학가(勸學歌)」·「도수사(道修詞)」 등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