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전쟁의 원인】
①에피담노스 사건
- 에피담노스(Epidamnus)는 이오니아 만(灣) 입구의 오른쪽에 있는 도시 국가이다. 에피담노스의 모도시(母都市)는 케르키라였다. 에피담노스에서 대중파(大衆派)가 소수파를 추방했었던 일이 있었는데, 추방된 자들이 이어족과 함께 에피담노스로 와서 해륙의 양면으로 에피담노스를 유린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에피담노스는 모도시인 케르키라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케르키라인은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이에 에피담노스인들은 코린토스에 와서 에피담노스를 코린토스의 식민도시로 위탁하고, 그들 도시(즉, 에피담노스)의 창설자가 코린토스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신탁(神託)을 내보이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케르키라에 적대감을 품고 있던 코린토스인은 우연히 들어맞게 된 에피담노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희망자는 에피담노스에 이주하라고 지시하고, 암브라키아(Ambracia) 및 레우카스(Leucas), 또 코린토스 자체 수비대에도 동행할 것을 명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케르키라는 분개하여 고압적으로 추방된 자들을 받아들일 것과 코린토스가 파견한 수비대 및 이주민을 송환 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에프담노스가 이 제의에 전혀 응하지 않자, 에피담노스를 공격·포위 하였다. 이에 코린토스는 사방으로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코린토스 자체는 30척의 배와 3000명의 중무장병을 갖추었다. 이러한 코린토스의 준비를 알게 된 케르키라는 라케다이몬과 시키온(Sicyon)에 사절 파견을 의뢰하고, 코린토스에 가서 코린토스
의 수비대와 이주민을 에피담노스에서 철수 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코린토스는 이 같은 제안에 전혀 응수하지 않았다. 케르키라인들은 준비해 둔 80척의 배로 코린토스선(船) 15척을 침몰시켰다. 이 싸움 뒤에 케르키라…
참고문헌
민석홍, 西洋史槪論, 三英社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전쟁사(상,하) , 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