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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염무(顧炎武: 1613~1682)
청대 초기의 사상가, 지리학자, 음운학자, 시인. 자는 영인(寧人), 호는 정림(亭林), 본명은 강(絳). 곤산(昆山: 강소성) 출신으로 명 만력 41년에 태어나 청 강희 21년에 사망했다. 그는 강남의 대 가문 출신으로 조상은 모두 독서하고 관리가 되었다. 젊어서 ‘복사(復社)’에 가입하여 환관의 횡포에 저항하고, 후에는 소주(蘇州)에서 항청(抗淸) 무장활동에 가담했다.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속과 지리를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하다 죽었다. 철학 방면에서는 공허한 현학(玄學)과 이학(理學)을 배척하고 실용주의적 신학문을 주장했으며, 역사학 방면에서는 ‘천하의 필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사회 제도면에서는 봉건적 과거제도를 반대하고 가혹한 세금 및 지주 관리들의 토지 겸병을 반대했다. 지리학 쪽으로는 현지 답사와 실제 고찰을 통해서 전인들의 오류를 바로잡았고, 음운학 방면에서는 고음(古音)의 원류를 파헤쳐 청대 음운학의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특히 문장의 내용을 중시하고 고인 작품의 모방을 반대했다. 그의『일지록(日知錄)』은 철학과 역사학에 관한 기록이며, 『천하군국이병서(天下郡國利炳書)』120권은 방대한 사지(史地)관련 저작이다. 『여우인논학서(與友人論學書)』는 명대 말의 진부하고 공허한 학술 사상을 비판한 것이다.
고증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고 왕 부지(王夫之), 황종희(黃宗羲)와 함께 청대 초기의 학계와 사상계를 빛낸 인물로 꼽힌다.
참고문헌
·邱燮友 外, 1994 〈중국학 입문〉서해문집
·이병갑, 1995 〈중국역사사전〉학민사
·高國抗, 1998 〈중국 사학사〉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