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4.19 혁명이란?
- 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하여 일어난 민주주의혁명이다. 4?19의거, 4?19혁명 또는 4월혁명이라고도 한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에 동조한 시민들이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그 결과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집권여당인 자유당이 몰락하였으며, 허정(許政) 과도정부를 거쳐 내각책임제 개헌에 의한 7?29총선으로 장면(張勉)을 국무총리로 한 제 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2. 4.19 혁명의 원인
<간접적인 원인>
- 종신집권(終身執權)을 노린 대통령 이승만의 지나친 정권욕(政權慾)과 독재성 및 그를 추종하는 자유당의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된 데 있다. 이승만은 환국(還國) 이후 다른 어떤 민족지도자보다도 가장 두터운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수완으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였다.
<직접적인 원인>
-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 나타난 국민들의 야당지지 성향과 투표결과를 분석한 자유당 정권은 순리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1960년 정부통령선거를 처음부터 관력을 동원하여 부정하게 치를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음모는 정의감에 부라는 한 말단 경찰관이 ‘부정선거지령서’의 사본을 민주당에 공개함으로써 백일하(白日下)에 폭로되었다. 3월 15일 선거 당일에는 마산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벌였고, 시민들도 학생 데모에 합류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4월 11일, 그동안 행방불명이 된 마산상고생 김주열(金朱列)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무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마산은 물론이고 전국의 학생들과 국민들의 흥분은 극에 달하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4월 18일 고려대생 3,000여명의 의사당 앞에서 연좌(蓮座) 데모를 한 후 귀교하는 길에 정치폭력배들의 습격을 받아 1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고려대생들의 4?18데모는 그 다음날 학생들이 총궐기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