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위작설 - 초록본과 모본을 대조해보면, 초록본은 그나름대로 치밀하게 모본의 일부를 취사선택하여 발췌한 것이다. 모본의 내용을 용약해서 기술하거나 문장을 변개한 것이 아니라, 모본의 일부구절과 글자를 가필이나 수정없이 그대로 발췌하였다. 어떤 부분에선 한 문장의 군데 군데를, 때로는 한 구절의 중간의 몇자만을 옮기는데 전후 문맥이 통하고 내용의 주요 부분이 포함되게 하였다. 이는 모본을 옆에 두고 상당기간 치밀한 작업을 한 결과이지, 감시를 피해 단시간에 급히 뽑아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초록본이 일본 궁내성 용지에 쓴 모본과 달리, 조선종이에 조선식 묶음으로 되어있는 것도, 그가 일본에 장기간 머물러 있을 때 하였던 작업의 소산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초록보과 모본은 두가지 창작물이 아니다. 전자는 후자의 내용을 일부를 원문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박창화는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소학교와 배재고보의 교사를 지냈다. 여러편의 한문소설도 저술하였다. 교육기관이나 전문연구기관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서들을 섭렵하였다. 또 일본 궁내성 서릉부에 10여년간 근무하면서 조선관계 고문헌 정리를 담당하였다. 그는 역사연구에서 사료가 지니는 의미와,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간 일서로 알려저온 김대문의 화랑세기의 가치를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만약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본이라면, 모본이 지닌 가치는 초록본에 비할 바가 아님을 몰랐을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모본 외에 따로 초록본을 만들었고, 그 종이와 제본 및…
박창화는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소학교와 배재고보의 교사를 지냈다. 여러편의 한문소설도 저술하였다. 교육기관이나 전문연구기관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서들을 섭렵하였다. 또 일본 궁내성 서릉부에 10여년간 근무하면서 조선관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