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핸드폰을 통해 우리는 좀더 빨리,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생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러한 핸드폰은 우리에게 그리움을 빼앗아 가는 것만 같다. 누군가가 그립다면 언제나 폴더를 열고 번호를 누르면 우리의 그리움은 단번에 해결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리움을 느끼는 것 조차 용납하지 않는 핸드폰은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며 느낄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것 같다.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쓸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단순하고도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서 짧고 재빠르게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버리면 간단한 것을 애써 앉아서 생각하며 그리워 하며, 느끼며 편지를 쓸 필요가 없을테니까......
물론 이모든 것이 핸드폰만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비롯한 현대 첨단 문명들의 이면일 것이다. 다만 핸드폰에게 이 죄를 다 뒤집어 씌운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가깝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에게 핸드폰을 없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엔 이미 핸드폰은 우리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과 몇 년사이에 급속도로 이루어 진 일이다.
핸드폰이 급속도로 우리에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독교는 우리에게 오랜 새월을 통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짧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존재 하였을 것이고, 우리는 뒤늦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기독교가 종교로서 현대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기독교 문화를 한번쯤 뒤돌아서서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