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실 헨리5세는 전투를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먼저 화친을 제의 했었다. 에릭 두르슈미트,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세종서적, 2001, p.40
그러나 프랑스 국왕은 화친을 거절하고, 프랑스 기사의 용감함을 믿으면서 비가 오는 진흙탕 속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말 탄 프랑스 기사들을 전멸시킨 것은 진흙탕과 장궁 그리고 말뚝이었다. 말뚝은 말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헨리 5세는 수많은 사로잡힌 프랑스 기사들을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웨일즈인들을 시켜 학살한다. 이는 명백한 중세 전투 규칙 위반이었다. 헨리 5세는 역사에 포로를 살해했다는 오명을 남겼으며, 중세의 기사도 정신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에릭 두르슈미트,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세종서적, 2001, p.54
프랑스인들은 전쟁에 패배했다는 것보다 바로 이러한 영국 왕의 행위 때문에 그 후 수세기 동안 영국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증오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실, 백년전쟁을 통틀어 영국군의 야만과 기사도를 벗어난 행동은 프랑스군보다 심했다. 프랑스군은 오히려 중세 전쟁 규율과 기사도와 명예를 고지식하게 따지는 인상을 준다. 이는 영국군이 무식한 평민 출신의 웨일…
참고문헌
참 고 문 헌
버나드 로 몽고메리,『전쟁의 역사 I』, 책세상, 2000
다니엘 리비에르,『그림으로 보는 프랑스 역사』, 까치, 1995
앙드레 모로아,『영국사』, 기린원, 1991
앙드레 모로아,『프랑스사』, 기린원, 1991
에릭 두르슈미트,『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2001
배영수외,『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0
로저 프라이스,『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개마고원, 2001
헤르네르트 네테, 『잔 다르크』. 한길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