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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량사에 의하면 아치(Arch)형 다리의 경우 이미 기원전 4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었다. 우리나라 옛 다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 교량의 최초 기록으로는 「사기주본기(史記周本紀)」의 주나라 무왕(武王:기원전 1134~기원전 1116년)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의 기록에‘거교’라는 다리 이름이 보인다. 이는 기원전 1122년으로 이미 이때 다리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현존 중국 최고(最古)의 석교는 하북성 조현에 있는 안제교(安濟橋)로 수나라 시대(581~618년)홍예교형의 우수한 다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실성이사금조’에 “12년 추 8월 신성 평양주 대교”라 한 것으로 이는 413년이다. 기록상 ‘대교’라 함은 당시에 상당한 규모의 다리를 놓았음을 알 수 있고, 이 평양주 대교 가설 이전에도 여러 다리를 이미 설치하여 이용하고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백제시대 다리에 대한 기록으로 「삼국사기」백제본기 ‘동성왕조’에 “12년 설 웅진교”라 한 것이 있다. 이때는 498년으로 웅진은 오늘날의 충청도 공주이기는 하나, 다리의 위치가 어디이며 어떠한 형태인지 알 수가 없다. 고구려의 경우 평양의 구제궁에는 통한(通漢), 연우(延祐), 청운(靑雲), 백운(白雲)의 네 다리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 자리를 찾아볼 길이 없다(「한국건축사」윤장섭). 이렇듯 삼국시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실성이사금조’에 “12년 추 8월 신성 평양주 대교”라 한 것으로 이는 413년이다. 기록상 ‘대교’라 함은 당시에 상당한 규모의 다리를 놓았음을 알 수 있고, 이 평양주 대교 가설 이전에도 여러 다리를 이미 설치하여 이용하고 있었음을 짐작 할…
·전설 ― 강감찬(姜邯贊)과 모기
옛 다리의 구분
·재료에 따른 구분 : 흙다리, 나무다리, 돌다리
·형식에 따른 구분: 보다리, 구름다리, 징검다리, 누다리, 매단다리, 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