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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층의 경우에도 그들은 소수를 제외한 거개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 하에 있었으므로, 하등 상민층과 구별될 수 있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신분적인 우월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생활타개를 위하여는 상민이나 노비층과 같이 상인, 공인, 농민으로서 활동치 않을 수 없기도 하였으며 또한 각인으로서의 처지에까지도 전락하는 층도 생성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 실정이었다. 그런데 양반층은 상공업의 기피를 그 생리로 하고 있었던 만큼 관료진출의 관문이 되고 있던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속성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실정은 벌족 수십가가 지배계층으로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도 이들에게 독점되고 과거시험은 하나의 요식행위로 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관료진출을 희망하는 양반층은 이 과거공부로 말미암아 오히려 몰락하여 가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 일반화하여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의 과거는 3년마다의 정기적인 식년시 이외에도 여러 가지 명목의 과거시험이 많이 있었다. 정조 말년의 경과의 경우를 보면 문과응시자가 11만, 무과응시자가 3만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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