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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군이 살았던 동네는 정확히 충주시 달천가의 풍동이다. 풍동의 뒷산에 그의 묘가 있고, 강 건너편으로 그를 모신 사당 충렬사가 있다. 충렬사 안에는 영조23년(1747년)에 세워진 전주 이씨 정렬비와 정조15년(1791년)에 정조가 직접 쓴 비문의 충렬사비가 있다.
이 비석 앞을 지나던 옛 나그네가 쓴 글이 있다. “내가 달천을 지나가다가 장군의 부인 이씨의 비를 보게 됐는데, 소슬하여 머리털이 대나무처럼 일어섰다. 장군에게 그와 같은 부인이 있음을 찬탄하며 들어가 장군 화상에 절하였다. 그 철의(鐵衣)를 보니 마치 나비 날개처럼 가볍게 입었고, 명나라 황제가 내려주었다는 먹은 어제인 양하여,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이제 이 전(傳)을 보니, 김자점 이 놈의 살갗을 처단하지 못하는 게 분격스럽기만 하다.” 고소설 ‘임경업전’을 읽고, 그 뒤편에 누군가가 적어놓은 한 대목이다.
임장군과 관련된 다른 유적지로 삼초대(三超臺)가 있다. 풍동 앞을 흐르는 달천을 건넌 깎아지른 산에, 3층 단이 쌓여 있다. 수목에 가려 전체적인 규모를 분간할 수 없는데, 강가 아스팔트 길에서 보면 옹색한 산비탈에 누군가 돌을 쌓은 흔적이 보인다. 그게 첫번째 단이고, 중간 단은 잘 보이지 않으며, 세번째 단에는 정심사라는 절의 산신각이 올라 앉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임경업은 이곳 삼초대 “100여척의 층암 절벽을 세 발자국에 뛰어내리고 또 오르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안보쪽으로 향하는 살미면 세성리에 후손들이 세운 사당, 임충민공 별묘(別廟)가 있다. 이곳에는 임장군이 살았을 때에 중국 화공이 중국 황제에게 바치려고 그렸다는 영정이 걸려 있다. 살미면 별묘에서 수안보 온천이 그리 멀지 않다. 수안보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중원의 미륵사지를 둘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