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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정답은 큰 정부, 강한 정부를 표방한 우리 정부에 있다.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와 중간과정은 다르지만 결론을 비슷할 큰 정부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국부(國富)를 무분별하게 대중에게 퍼주는 포퓰리즘(大衆迎合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는 페론주의. 이것은 1946~1955년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안 도밍고 페론의 통치에서 비롯되었다. 군인 출신 정치가로서 1946년에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독재자 후안 페론은 반공의 바탕 위에 초등교육 확장 등 개혁 정책을 단행하면서 민족주의적 경제 체제를 세웠다. 이른 바, 페론주의로 지칭되는 퍼주기식 경제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그런 인기위주의 정책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불보듯 뻔했지만, 그 외관상의 개혁적·민족주의적 요소와, 노동에 찌든 서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차원에서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페론의 정책은 대외 자립·공업 발전·사회 정의 추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독립 이후 아르헨티나의 주요 산업이었던 농·축산업에 의존하던 아르헨티나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공업화를 추진하여 진정한 경제 자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페론은 외국인 소유의 철도·전화 회사들을 국유화하고, 1947년 7월에는 경제독립을 선언하면서 모든 외채를 청산했다. 페론이 노동자들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노동입법을 추진한 것도 그 이면에는 노동자 계급의 소득 향상을 통해 내수를 진작시켜 아직 미약한 수준의 국내 공업 발전을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 페론이 집권 초기에 이렇듯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