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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때의 사마상여는 최초의 궁정시인의 지위를 얻어 문학자의 위상을 확보한다. 사마상여로 인해 문학이 그 표현된 아름다움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이 시기는 미문학이 2기를 관통하는 문학관의 핵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무제의 시기에는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였다. 전국시대 백가서에서 사상이나 이론을 표현하는 형식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사실을 서술하는 산문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사마천의 사건사건에 대한 뛰어난 묘사는 산문 일반의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이후 사마상여부터 시작한 부는 서서히 기교만을 중시하는 유희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자 유교주의 문학관에서 새로운 문체인 변문이 출현하였다. 변문은 이후 문학의 대표적인 것이 되나 번잡한 규정을 가진 문체이다 보니 귀족적, 엘리트적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흐름은 수, 당시대 통일국가가 출현한 이후에도 큰 차이가 없이 흘러오다가 신왕조와 문벌귀족의 항상 대항하는 역학관계속에서 정치적인 원인으로 인해 단순한 기교를 버리고 고전의 소박함과 강건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한 이러한 시도는 형식만 고전을 모방하려고 하고 내용면에서 사회진보와 결합되지 못하여 곧 도태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내면적인 부분에서의 문제제기와 함께 제 3기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