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선 시대의 실록은 1413년(태종 13) 《태조실록》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며, 26년(세종 8)에 《정종실록》, 31년(세종 13) 《태종실록》을 편찬한 후, 이 3대 실록을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 나머지 1부는 충주(忠州) 사고에 보관하였으나, 보존이 염려되어 전주(全州)·성주(星州)에 사고를 증설하고 다시 2부씩을 더 등사하여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
이후 《세종실록》부터는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정초본(正草本) 외에 활자로 3부를 더 인쇄·간행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각 사고에 1부씩을 보관하였다. 다만 태조·정종·태종 3대의 실록은 활자화하지 못하고 처음의 등사본을 그대로 보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춘추관·충주·성주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진주사고의 실록만이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에 의해 내장산(內藏山)으로 옮겨져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93년 내장산에서 실록을 넘겨받은 조정은 이를 해주(海州)로 옮기고 다시 강화도(江華島)·묘향산(妙香山)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왜란이 평정된 뒤 실록 간행사업을 일으켜 1603년 7월부터 3년 동안에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13대의 실록 804권 3부를 다시 출판하였다.
그 뒤 실록은 전주사고에 있던 원본과 재출판시의 교정본(校正本) 1부를 합쳐 5부가 갖추어져 있는 서울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 4부는 병화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중과 섬을 택하여 강파도 마니산(摩尼山)·경상도 봉화(奉化)의 태백산(太白山)·평안도 영변(寧邊)의 묘향산·강원도 평창(平昌)의 오대산(五臺山)에 사고를 신설하여 각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