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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민족 의식이 강했던 북간도의 분위기 속에서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이이생활」이란 어린이 잡지를 정기 구독했으며, 명동 소학교 급우들과 「새명동」이란 등사판 잡지를 내는 문학적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중학교는 송몽규와 함께 선교사가 운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인 은진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시절 <동아일보> 신춘 문예 꽁트 부문에 몽규의 `술가락`이 당선되었다. 이 일은 동주를 분발시켜 이때부터 습작 시노트에 시를 쓴 날짜를 기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해 몽규는 학업을 중단하고 김구 선생이 주관하던 낙양 군관 학교에 입학, 독립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러나 현지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년만에 돌아와 `요시찰 인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이때 동주도 1935년에 평양의 기독교계 학교인 숭실 중학교에 편입했다가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자 그것에 대한 항의로 이듬해에 자퇴하였다. 그래서 동주는 용정의 광명 중학부에, 몽규는 평양 대성 학교에 편입하여 학업을 재개한다. 그리고 1938년, 나란히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들이 연희 전…
참고문헌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집’ 윤동주 청동거울 2002
- ‘윤동주 연구’ 권영민 문학사상사 1995
- ‘별의 노래: 윤동주의 삶과 시’ 김수복 한림원 1995
- 윤동주닷컴(http://www.yoondongju.com)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