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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그토록 갈망하던 독립을 성취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이유는 독립 자체가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외세의 힘으로 쟁취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임의적인 경계선이었던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는 미소 양국에 의해 남한과 북한이라는 전혀 다른 두 체제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전국은 큰 혼란에 휩싸였으며 이 시기의 가장 큰 희생자는 이념과 전혀 무관했던 민중들이었다. 지금부터 남북의 이념대립과정에서 희생된 양민들의 실태를 알아보자.
1. 제 주 도 4 . 3 사 건
4.3사건 당시의 참혹성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130여 명의 사람들이 제주도의 한 활주로 밑에서 시신으로 묻혔다는 것을 당시 목격자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다랑쉬 굴에서 11구의 시체 유골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북촌 초등학교에서는 군인 및 공무원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좌익사범으로 몰려 무수히 많은 양민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집단 학살되어 인근 밭에 파묻혔다는 것도 당시의 목격자들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최소 3만여 명의 사람들이 4.3사건을 통해 학살되었다고 한다. 당시 제주도의 인구가 20만이라고 했는데 실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것이다.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제주도사태는 이승만의 단정에 반발한 소수의 좌익무장단체가 일으킨 봉기가 발단이었다. 그들은 우익 단체들을 피습하여 많은 피해를 주었는데 이러한 일이 있은 이후 군경은 동료들이 피해를 입은 것에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킨 주동자들 이외의 다수의 양민들도 빨갱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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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자료: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1부, 28부, 29부)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년 박명림 지음)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2002년 살림터, 신경득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