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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비극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6·25동란’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요 민족사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연구가 있으므로 여기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 중에서도 전쟁의 참혹성은 사상자의 규모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시된다. 한국전쟁의 사상자 규모는 400만 명 수준에 육박한다. 군인 사상자가 80만 명 정도인 반면 민간인 사상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남한에서는 군인 30만과 민간인 100만이, 북한에서는 군인 50만과 민간인 200만 명이 사상자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6·25동란’이나 ‘6·25사변’ 혹은 줄여서 ‘6·25’라는 표현이 후대 사람들에게 강력한 편견을 유발하는 이념적 장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국전쟁에 ‘6·25’라는 표현을 붙임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6월 25일 이전에는 한국전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매우 평화로운 상태가 6월 25일을 계기로 전쟁상태로 갑자기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6월 25일 이후가 전쟁상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6월 25일 이전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였을까?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까? 북한 공산괴뢰집단이 남한의 평화와 행복을 파괴하기 위하여 6월 25일을 기해 갑자기 남침을 한 것일까?
해방 직후의 남한 상황을 기록한 미군정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미군사령관으로 있던 하지 중장은 한반도, 특히 남한 상황이 “화산의 주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했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상황은 안팎의 정세변화에 의해 화산의 끓은 용암덩어리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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