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정전제란 무엇인가
정전제는 본래 중국 하·은·주 삼대의 토지에 관한 유제(遺制)였다고 주장되고 있다. 『맹자』, 『주례』, 『한서』 등에 그에 관한 내용이 전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토지의 한 구역을 ‘정(井)’자로 9등분하여 8호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있는 한 구역은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토지제도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정전제가 붕괴되었으며, 진·한 이후에는 토지겸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전제를 다시 실시할 것을 주장하는 견해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정전론이라 칭하여졌다. 정전론은 토지제도 개혁론의 하나로서, 균전론·한전론 등과 함께 한대 이후 당 ·송대에 걸쳐 계속 제기되었다.
2) 조선시대와 정전제
공자가 “주는 하, 은의 예를 살필 수 있었으니, 주의 문화여, 찬란하도다! 나는 주의 예를 따르겠다.”(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고 언급한 바 있고, 주자 또한 예학을 논함에 있어서 고례(주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유학, 그 중에서도 주자의 성리학이 절대적인 학문으로서 자리잡고 있던 조선에서 주례가 가지는 권위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주자의 학통을 철저히 계승한 조선 숙종대의 대유(大儒) 우암 송시열이 서인의 영수로서 남인과 예론을 펼쳤던 예송논쟁 때에 우암은 당시 영의정 정태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음에도 주례를 고집하다가 결국 실각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주례에서 토지제도로 제시하고 있는 정전제는 이상적인 토지제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되어 중종 때 사림파에 의하여 실시 주장이 제기된 이후로 계속 그 실시가 주장된다.
3) 조선시대와 기자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으로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자, 기원전 1122년 동쪽으로 도망하여(기자동래) 조선에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하고, 팔조금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