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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이 과거에 낙방한 뒤 실의와 좌절 속에서 병서를 읽으며 마음의 울분을 달래고 있을 1893년 말 경 황해도 해주 일대에 널리 퍼진 동학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동학의 평등주의에 감화되어 입도한 뒤 포덕(布德)에 힘을 기울여 접주(接主)가 되었다. 1894년 황해도 도유(都儒)로 뽑혀 보은집회에 참가하였다. 여기서 손병희(孫秉熙)를 만났으며, 제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팔봉도소접주(八峰都所接主)라는 첩지를 받는 등 북접계열로 동학교문활동을 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친일정권은 일본군과 연합하여 농민군을 공격하는 한편, 동학교도 전체를 비적(匪賊)으로 몰아 탄압했다. 귀향길에 농민전쟁을 목도한 그는 그해 9월 삼남에서 올라온 경통(敬通)에 호응하여 해주 죽산장(竹山場)에서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깃발 아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뒤 배신한 우군(友軍) 이동엽(李東燁) 부대의 습격을 받아 대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학군 토벌에 나선 신천(信川) 진사 안태훈(安泰勳:安重根의 아버지)의 집에 은거했으며, 위정척사계열인 유인석(柳麟錫)과 동문인 고능선(高能善)의 문하생이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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