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식민지시기 자유주의의 허약성
- 식민지 지배, 가족과 국가라는 이중의 억압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하였는가? 그런데 일제식민지체제는 자유주의의 이중의 과제를 분열. 식민지국가는 유교적인 가족, 친족 농촌공동체를 해체시킴으로써 ‘자유’의 기반을 열어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권리 등의 자유주의적 가치는 철저히 억압. 다만 국가에 순응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활동을 허용한다는 것.
* 한국근대사에서 왕조질서나 양반질서 해체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식민지였으며 이후 근대화나 민주화에 긍정적인 역할
- 이광수의 예를 보듯이 1920년대 자유주의로부터 1920년대 민족성론을 거쳐 1930년대는 파시즘으로 급선회. 이후 황도주의까지 논리적 실천적 일관성을 가지지 못함.
- 최근 지역단위의 ‘시민사회’와 ‘정치’의 형성에 주목하는 연구 경향이 있음. 그란 식민지 ‘유지’ 중심의 정치경험은 시민적 권리인식의 발전에 부정적이었을 수도
- 식민지시기 자유주의가 취약한 원인은 ①근대초기 형성된 시민적 정치발전의 좌절 ②식민지 BG계급 자체의 취약성 ③사회운영의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실천해 본 적이 없음.(교육 정치)
4) 좌파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위한 투쟁.
- 그러나 보편적 인권이나 침해받지 않을 개인의 권리라는 접근 부르조아자유주의로 혹은 서구적 개인주의로 인식됨.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개인적 권리의 인식과 실천이라기 보다는 계급 또 민족 등의 집단적 권리로 인식
- 반제반봉건 과제는 토지문제, 8시간 노동 등 경제적 요구에 집중
- 조직적으로 노동자 게급의 조직화에 주력
4. 일제말 파시즘적 국가인식의 확산
1) 배경
- 1930년대 이후 일본 독일 이태리 등에서 파시즘 본격 대두.
- 국체론에 근거한 서구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배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