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주요 국가행사는 반드시 주과식선(酒果食膳)을 올리기 전에 임금께 차를 올리는 진차(進茶)의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궁중에 차를 취급하는 관청인 다방(茶房)이 설치되고 큰 사원 주위에는 차를 재배, 제조하기 위한 다소촌(茶所村)이 마련되었으며 대중용 차가게인 다점(茶店)과 (훗날 차문화가 쇠퇴하면서 주막으로 고쳐 부르게 됨) 여행자 휴게소인 다원(茶院)이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차와 다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귀족과 승려들은 앞다투어 중국의 차와 다기를 사 모으기도 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차문화가 전파되면서 귀족, 왕실, 승려 사이에 차 마시는 습관이 급격히 확대되어 도자기의 수요도 크게 증가했는데 그 증거로 초기에 도자기를 만들었던 가마터에서 의식 용구가 출토되었고 출토된 유물 대부분이 차를 마시는 그릇인 다완(茶宛)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고려인에게 있어서 차문화는 상당히 뿌리 깊숙이 자리잡은 문화생활중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인들이 마시던 차의 종류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잎차, 말차, 단차였는데 이중에서 말차의 음용이 가장 성행하였습니다.
고려인들의 차생활은 왕실에선 다분히 의식적이었고, 사원에서는 불공의 첫째요, 수도용으로 애음되었지만 일반 선비사회에서의 차생활은 격식 없는 자유 분방한 것이였습니다.
차 생활로 머리를 맑게 하며 차와 더불어 문학을 논하고, 정치적 혼돈 속에서는 스스로의 심성을 순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차를 음미함으로써 인생을 다듬고 되돌아보고 때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참고문헌
http://www.net-in.co.kr/dorosi/gp3.html
http://www.kimchimuseum.com/korea_tea/submenu14_c.htm
http://www.coffeero.com/20011112/ps_132.htm
http://w3.seoul-gchs.seoul.kr/~sh002129/html/a-3-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