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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2월 27일 실시된 제 9 대 국회의원선거는 공화당과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의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원내는 여권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원외에서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이 범국민적으로 번져 나갔고 정부는 이에 대해 물리적 힘으로 대처하였다. 78년 7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를 통해 박정희가 제 9 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반정부운동은 줄어들지 않고 개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같
같은 해 12월에 치러졌던 국회의원선거도 공화당이 지역구에서 신민당보다 1.1%나 뒤져 민심이 떠난 것을 드러냈다. 선거 결과에 자신한 신민당은 김영삼(金泳三) 의원을 새 총재로 선출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이에 정부여당은 79년 10월 4일 김영삼을 제명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김영삼의 제명으로 인해 대학가의 민주화시위는 가속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박정희를 저격함으로써 유신체제는 붕괴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열어 국무총리 최규하(崔圭夏)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