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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시대
조선 초기의 글씨는 고려 말기에 받아들인 조맹부의 서체가 약 200년간을 지배하였다. 그것은 고려 충선왕 때 직접 조맹부를 배운 서가(書家)가 많았고, 또 조맹부의 글씨와 그의 법첩이 다량으로 흘러들어와서 그것을 교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435년(세종 17)에는 승문원(承文院) 사자관(寫字官)의 자법(字法)이 해정(楷整)하지 못하다 하여 왕희지체를 본보기로 삼게 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양체가 병행하였으나, 주류는 역시 송설체였다. 송설체에 가장 능한 서가는 고려의 이암과 함께 조선 초기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이다. 이용의 글씨는 송설체를 모방하는 한편, 자기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된 독자성을 나타냈다.
당시의 최고 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의 발문에는 호탕하고 늠름하며 품위 또한 높아 당시 <천하제일>이라 하였다. 선조 이전에 서명(書名)이 높은 사람으로는 강희안(妾希顔)·성임(成任)·정난종(鄭蘭宗)·소세양(蘇世讓)·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 등이 있다. 대체로 조선 전기는 조맹부·왕희지 이외에도 명나라의 문징명·축윤명(祝允明)의 서풍도 들어와 함께 행하여졌다. 그러나 대체로 신라나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