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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체의 분화와 발전
주나라가 멸망하고 전국시대를 거쳐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시황제(始皇帝)는 자국의 문자를 중심으로 혼란에 빠진 서체의 통일을 시도했다. 통일 이전의 문자를 대전(주문)이라 하는 데 대해, 통일 후의 문자를 진전(奏篆) 또는 소전(小篆)이라고 했다. 시황제는 각지에 자신의 송덕비를 세우게 했는데 대신(大臣) 이사(李斯)는 시황제를 위해서 각석(刻石)에 많은 글을 썼다.
현존하는 것으로 BC219년의 《태산각석(泰山刻石)》 《낭사대각석(瑯邪臺刻石)》이 있다. 모든 제도·문물을 통일시키려고 했던 시황제는 도량형도 표준화하여 관제(官製)의 원기(原器)를 만들고 저울에 조서(詔書)를 새겨서 민간에 배포했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에 한(漢)나라의 고조는 도읍을 장안(長安)으로 정했다.
한나라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뉘는데, 처음에는 진나라 때의 전서(篆書)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장식적이고 복잡하여 문서 작성에 불편하게 되자 전서 대신에 간소한 예서(隸書)가 하급관리들 사이에서 발명되어 후에 일반인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의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후한 때에 자형이 정리된 좌·우 균형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