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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안개 속으로 안짱다리 농부가 가네
황소 몰고 느릿느릿 가을 안개 속으로
초라한 촌락들 수줍은 듯 숨어 있는데
농부는 저 아래로 가면서 흥얼거리네
사랑과 배반의 노래를
반지와 멍든 가슴의 가사를
오! 가을 하늘 때문에 여름이 저물었네
안개 속으로 두 잿빛 실루엣이 가네
난 이런 시가 참 좋다. 시에 목숨바쳐 정열을 불태우는 시인지망생이 아닌, 한 평범한 사람의 감성에 와닿는 간결하고 아름다운 필치. 나는 복잡하고 길며, 그 뜻을 일일이 해석해야 하는 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누항’이나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도 조금 읽기 버거운 점이 없지 않았다.) 거창한 의미나,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내가 정지용의 ‘향수’ 같은 이미지즘 계열의 시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생각할 거 없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영상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이처럼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들은 모두 이미지즘의 계열에서 팔딱팔딱 뛰고 있는 듯 하다. 모든 시들이 읽은 직후, 한개, 혹은 여러개의 이미지로 압축되어 눈앞에 와이드스크린처럼 펼쳐진다. 맨 처음에 언급했듯이, 긴 산문시인 ‘누항’ 또한, 읽고 나면 마지막 행인 “태양잘린 목”에 압도되어 목이 잘린 채, 서서히 떠오르는 참혹한 붉은 해의 모습이 연상되고, ‘미라보 다리‘ 같은 경우에도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나이의 모습이 펼쳐진다. ’가을’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