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처음 수도원의 공동체는 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수도원은 하나님을 바라고 경건한 순례자들을 위한 도피성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3세기 후쯤에 사회의 중요자리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공동체에서도 자급자족하는 수도원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딕트 수도원은 공동체가 가지는 자기보존 능력으로 말미암아 교육, 종교, 경제, 정치 등 여러 분야를 위하여 중요한 기능을 다할 수 있었다. 8세기에 이르러서는 베네딕트 수도원들이 학교와 도서관을 갖추게 됨으로 교부들의 신학적 전통을 연구하고 이를 전수하기 위해 사본을 만들었던 것이다. 중세 수도원 운동은 8-9세기 중반 이후에 성직자수도회의 필경실에서 수도원 신학이 태동했다. 이것은 수도원 인문주의라고 표현되는데 중세의 스콜라신학 때문에 자주 간과되었다. 그런데 세기가 바뀔 즈음해서 종교적인 삶의 다른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전통적 수도원의 형태는 갈수록 세상의 문화와 경제구조에 따라 선교의 과제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9-10세기에 이르러 귀족가문의 출신이 아니면 수녀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
참고문헌
베틀F.루이스「그말씀」편집부(서울:두란노,1997),p167
서성환,“통일의 영성: 남북화해 시대의 독일 통일의 경우에 비추어” 교회와 신학(2000. 여름호),p12-20
장춘식,“새 천년 시대에 새로운 영성” 기독교사상500(2000,08),206-219
변종길, 「화란 개혁교회의 영성과 경건」성경신학회에서 발표된 미간논문,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