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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을 이해하려면 먼저 시대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1592년부터 7년 동안 임진왜란이 있었고, 그 당시 일본은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초토화시켰으며, 또 임진왜란 와중에 만주에서는 여진족이 일어나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졌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30년 만인 후금의 침략을 받은 조선은 마지못해 형제의 맹약을 맺고 강화를 성립시켰다(정묘호란).
그 뒤 후금은 국호를 청이라 하였고, 조선에게 신하의 예를 행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했고 이에 청나라는 조선을 침략해 왔다.
이때 나라의 존망이 달린 극한 상황에 부딪쳐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김상헌이라는 사람과,
현재의 위급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일시적으로 항복했다가 국력을 키워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최명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즉 김상헌은 타협없이 원칙을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인 반면, 최명길은 그런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일시 후퇴하는 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호로”라 하여 멸시하곤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가 조선을 멸망시키지 않은 은혜에 감사하다는 “대청황제공덕비”를 세웠으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가 망하고, 중국을 장악한 청나라는 인질로 잡아갔던 조선의 세자를 돌려보냈고, 그의 둘째아들 효종이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즉위와 동시에 북벌 의지를 가지고 군비를 강화하였지만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초조함을 느낀 효종은 산양에서 독서하던 선비들을 등용하여 북벌계획을 세우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효정의 지극한 신임아래 국정을 지휘해 나갔다. 그가 생각한 북벌의 가장 큰 의의는 도덕적인 인륜 문화를 유지하고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수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