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B.C. 550년경 평등을 부르짖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귀족들 가운데세도 특히 부유한 사람들의 사치스런 생활에 제동을 가했고 외국과의 교역도 완전히 금지시켰다. 이로써 스파르타는 평등주의 국가로 한걸음 다가섰지만 그것은 단지 명목상의 표현에 불과했다. 전통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몇몇 중요한 가문들의 위세는 지속되었던 것이다. 평등하게 땅을 배분한다는 이상적인 정책은 현실적으로도 완전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없는 시민이 사망하는 경우, 그의 재산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돌아가게 되고, 이때 상속자는 죽은 사람의 딸과 결혼해야 했다. 결국 이렇게 하여 두세 개의 토지가 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반면에 장자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은 간신히 연명할 정도의 할당량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평등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였다.
B.C. 5세기부터 사회구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B.C. 464년, 지진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주를 제거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B.C. 397년에는 노예와 중간계층 그리고 빈곤 때문에 하층민으로 전락한 시민들이 평민에 대항하는 음모를 꾸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