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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은사의 가람구조
절터의 중앙에는 금당지가 있었고 두기의 거대한 석탑은 아침햇살에 노랗게 물들었다. 그것은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큰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규모 면에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이것에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패망한 백제의 운명과 같이 허물어져 있던 미륵사지 석탑에게서 받을 수 없었던 어떤 ‘힘’을 감은사지 석탑에게서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절터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 보다 매우 협소했다. 설화에 따르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물길을 따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는데, 현재는 수로의 흔적도 없고 감은사지에서 동쪽을 바라보아도 해안이 보이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물론 감은사지 앞 들판이 반듯하게 농경지 정리가 되어있기는 하지만, 감은사 앞 들판을 가로지르는 대종천의 수심이 낮아진 탓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몽고군이 황룡사의 범종을 약탈하여 운반하던 중에 대종천의 물살에 휩쓸려 동해바다로 잠겼다고 하니, 당시에는 이곳의 유량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 용담(龍潭)
용이 된 문무왕은 동해바다에서 대종천을 거쳐 용담에 도착해서 쉬어갔다고 한다. 연못은 문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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