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머리말
크로포트킨은 1842년 12월 21일 모스크바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다. 군사학교의 교육을 받은 후 시베리아연대에서 복무한다. 이 곳의 경험은 뒷날 그의 사상의 토대를 형성한다. 1862년 시베리아의 장교시절, 중요한 지리학 및 인류학적 조사를 행하여 지도에 나타난 잘못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상호협조는 생존경쟁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반면에 국가행위는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자연과학에서 명망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30세 때, 자연과학과 정치적 충동의 기로에 선다. 자연과학을 포기하고 1872년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에 기입한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인터내셔널의 제한에 실망한다. 인터내셔널의 문열 이후, 러시아에 돌아와 이론을 정리하고 선전활동을 하다가 붙잡힌다. 1876년 극적으로 탈출하여 영국·스위스·파리 등지를 떠돌아다닌다. 스위스에서 잠시 『반항』지의 편집을 맡는다.
짜르의 암살로 추방되어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프랑스혁명을 연구한다. 그러나 정치적 분위기에 낙담하여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1882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체포되어 유명한 공개재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