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본론
정치적 상황
오므리로 인해 이스라엘의 정치상황은 다시 한 번 안정되었다. 이것은 백성들을 기쁘게 했을 것이다. 오므리는 3년 동안 세 번째 왕가를 대신 하였다. 엘라는 2년, 시므리는 7년을 통치하였으며 오므리와 디브니의 분단은 모든 것을 혼란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단이 해결되자 오므리는 3세대를 지속할 왕조를 시작하게 되었다.
안정은 바로 온 것이 아니었다. 다메섹에 수도를 둔 북방의 아람국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유다의 아사 왕은 바아사를 공격하기 위해 이미 이 나라 왕 벤하닷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었다. 벤하닷은 공격적이었다. 알레포근처의 그가 남겨놓은 비문에는 주전 850년경까지 멀리 북방 수리아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좀더 오랫 동안 연약한 나라로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강한 통치자를 대항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겪어야 했다.
다메섹 뿐만 아니라 더 큰 위험이 동쪽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수 십년 동안 세계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수리아가 그 동안 미타니족과 후리족에 의해 그리고 후에는 유브라데스 상류지역의 아람족들에 의해 봉쇄되었다가 이제 이 견제로부터 풀려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극도의 잔인성과 과격한 수단으로 알려진 아술나실팔 2세에 의해 특히 생겨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앗수리아 제국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해지는데 이때 그의 군대는 유브라데스강을 건너 멀리 서쪽으로 지중해의 바이브로스 시돈 두로 등의 땅을 점령하였다. 이때 오므리가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이스라엘은 이 정복자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았지만 그 후계자 살만에셀 3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주전 2천년대의 세계 정치 무대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앗시리아는 차츰 강성해지는 아람족의 압력에 부딪쳐 점점 위축되어 오다가 마침내 자기…
참고문헌
1. 이스라엘의 역사 레온 우드 기독교 문서 선교회
2. 이스라엘 역사 존브라이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3. 구약역사 김의원 개혁주의 신행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