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北宋)의 문학가이며, 사학가. 자 영숙(永叔), 자호 취옹(醉翁). 만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라고도 불렸으며, 시호를 `문충(文忠)` 이라 했다. 저서로는 『구양문충집(歐陽文忠集)』153권에 부록 5권이 있으며, `신오대사(新五代史)`74권을 찬하기도 하였다. 구양수는 북송 시문 혁신운동의 우두머리였다. 젊어서는 한유(韓愈)의 유고를 얻어 그에게서 넓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정치에 종사한 후에는 윤수(尹洙), 매요신(梅堯臣),소순흠(蘇舜欽) 등과 함께 고문 제창에 힘쓰는가 하면 스스로 한유의 문장을 교정하여 세상에 간행했다. 그는 특별히 후진 양성을 중시했는데 일찍이 지공거(知貢擧) 의 지위를 빌어 고문에 유능한 인재들을 널리 등용했다.
소순(蘇詢) 부자와 증공(曾鞏),왕안석 등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구양수는 또한 산문, 시, 사 등의 방면에서도 북송 제일의 성취를 지닌 작가였다. 그의 이론적 주장과 실천적 작품들은 한유의 전통을 계승하여 탁월한 경지와 특색을 지니고 있다. 도(道)의 작용 및 현실생활과의 관계를 중시했고, 한유 문장 중에서 `기(奇)`의 일면을 버리고, `이(易)`의 일면을 발전시켜 평이하면서도 부드럽고 독특한 풍격을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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