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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각처에서 시민과 계엄군의 충돌로 학생 36명을 포함한 319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부상자가 3,000명, 계엄군측 부상자 6,000명(당국발표)을 발생시킨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행했다.
천안문사태 이후 1990년 6월 제 13기 4중전회(中全會)서 조자양 총서기는 민주화시위를 지지, 당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 등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고 강택민(江澤民) 상해시 당서기 겸 정치국위원이 총서기로 선출된다.
11월 6~9일의 5중전회(中全會)에서 등소평은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을, 1990년에는 자신의 마지막 직책이던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하고 후임으로 강택민 총서기가 두 직책을 승계했다.
1990년 1월 11일, 북경시의 계엄령이 해제되고 천안문사태는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졌다.
천안문 사태와 소련의 붕괴로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지자 개혁·개방체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1993년 3월 제 8기 전인대에서 개정된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개혁과 개방의 가속화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