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후기의병은 보다 대중적 의병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군대해산과 더불어 의병의 조직도 한결 전투부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전술도 향상되었다. 그리고 후기의병은 해산군인과 더불어 농민·광부·산포수·소상인 등 서민의병의 조직에 의해서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국민전쟁의 수준으로 발전해 갔다. 양반의병도 의병으로 계속 하는 한 양반적 생리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08년경이 되면 민중 속에 근거를 두지 않고는 의병 활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산유곡에서 노숙하면서 기습하며 기습을 받는 작전 속에서 봉건적 양반의 위계를 요구한다면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의병전쟁은 민중운동으로 정착하며 발전해 갔다. 의병전쟁이 민중운동으로 정착하는 가운데 민중의 민족의식이 성장한 것은 의병전쟁의 또 하나의 큰 의의라 하겠는데 민중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그 내용도 민중의 사회 경제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었다. 의병이 일본 상인과 농장을 습격하는 것도 그 일면이지만 납세 불납운동이나 한국인 친일 부호를 타박하는 것도 그의 단면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1.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대사강의』, 한울, 1997.
2. 조동걸, 『한말 의병전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3. 박성수, 「1907~1910년간의 의병전쟁에 대하여」, 『한국사연구』1,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