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6세기에 따를 만한 해석적 모델이 전혀 없이는 않았다. 물론 칼빈은 몇 곳에서 언급했듯이 에라스무스, 루터, 멜랑톤, 그리고 부쩌의 작품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곧 알겠지만 칼빈은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이들 주석가들을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지나치는 것이기에 가능한 그들의 방법을 간결하게 요약하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성경 주석들에서 풍유적인 해석을 사용하고, 성경의 도덕적 의미를 강조했다. 오리겐과 제롬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어거스틴으로 부터 라빌은(A. Rabil Jr, Eramus and the New Testament: The Mind of a Christiam Humanist [San Antonio: Trinity University Press, 1972] 107)) 말하기를: “사실상, 그의(에라스무스) 성경 해석 논의는 다른 어떤 작품 보다도 어거스틴의 책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On Christian Doctrine)로 부터 끌어왔다. Cf. Charles Bene, Erasme et Saint Augustine (Geneva: Livraire Droz, 1969) 435f.
그의 해석학 원리들을 끌어왔던 그는 성경은 여러가지 의미들을 Cf. his letter to the Englishman John Colet (1499): `. . . ex arcanis litteris, quoniam fecundissimae sunt, varios sensus elici posse, et nihil reiiciendum quod modo sit probabile nec a pietate abhorreat` (Opus epistolaarum Des, Erasmi Roterdami [ed. P. S. Allen; Oxonii: Clarendoriano, 1906] I.255, lines 15-17.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 또한 풍유를 사용했고, 성…
가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