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대원군의 개혁정치
19세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던 시기,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이 즉위하면서 조선에는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개혁의 중심에 선 이가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고종(재위, 1864~1907)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는 왕의 살아있는 아버지로, 우리 역사가 격변하고 있을 당시 세 차례에 걸쳐 왕권을 대행하며 실질적으로 조선 왕조를 통치하였다.
1) 개혁의 내용
인사개혁
대원군이 집권 후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이 `인사 개혁` 이었다. 60년 세도 정치 아래 노론 계열의 안동 김씨 한 가문이 모든 권력을 독식하던 분위기를 일신했다. 그리고 이들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비변사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대신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을 부활하고 삼군부를 설치하여, 통치 체제를 국왕 중심으로 재정비하였다. 왕실 종친의 지위를 높이고, 경복궁을 재건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히려 한 정책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원철폐
`진실로 백성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물며 서원은 우리 나라 선현을 제사하는 곳인데 오늘날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근세 조선정감》
이 글은 당시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대원군은 집권과 동시에 전국의 서원에 대한 조사 명령을 내려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도록 한다. 그리고 사사로이 서원을 짓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수많은 서원을 철폐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865년 3월에 이루어진 서원 중의 대표격인 화양동 서원…
이 글은 당시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대원군은 집권과 동시에 전국의 서원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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