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xxxxxx-1917년 겨울에 몇몇 유럽 도시들에서 갑자기 믿기 어려운 신비한 전염병이 생겨나 곧 전세계에 퍼지게 된다. 이 극의 주인공인 데보라는 가족과의 식사 도중 아버지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꽃병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우려다가 모든 행동을 멈추게 된다. 그 후로 그녀는 29년 동안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기면성뇌염 또는 수면병의 치료약인 L-Dopa의 발명으로 죽음과 같은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잠과 죽음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가 닮았다. 잠 속에 나타난 꿈은 남들에게 얘기해 줄 수는 있지만, 생생한 꿈 전체를 그대로 옮겨줄 수는 없다. 물론 죽음도 마찬가지다. 의식과의 단절도 잠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기적인 의식과의 단절이 잠이라면, 죽음은 영원한 결별이다. 데보라는 죽음과 같은 긴 잠을 통해 오랜 기간 틀에 갇힌 의식과의 단절과 기존의 틀과의 결별을 경험한다.
데보라는 자신의 무의식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심연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데보라가 행동을 멈춘 순간 그녀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고 그것을 멍하니 응시하는 동안 데보라는 어떤 거대한 생각의 기류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데보라는 자신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의식 저편으로 깊숙이 밀려나 존재하고 있었던 무의식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데보라는 무의식에 접근할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의식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무의식에 몰입하게 된다. 의식은 무의식에 사로잡히고 데보라의 의식의 기능은 약해지면서, 의식에 의해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무려 29년 동안이나 데보라의 정신을 지배한 것이다.
데보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러나 잠이 깬 후의 세상은 예전보다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