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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선천적으로 독서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도 문장의 단아함과 잘 짜인 구조가 주는 기쁨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의 독서처럼 어려움을 겪는 아동도서의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하며 애를 태우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읽은 아이들은 그게 하나의 습관처럼 돼서 세상을 볼 때도 책의 필터를 통해 본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 또한 사춘기의 민감하디 민감한 자기애를 다자이 오사무의 `얄미운` 글을 통해서 확인했고, 형들이 득시글거렸던 집에서는 경멸의 대상에 속했던 시집들을 몰래 읽으며 억눌렸던 감수성을 성장시켜나갔다.
부침이 심한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큰 굴곡 없이 성장했던 그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은 역시 재일조선인이란 그와 그의 가족의 정체성 때문에 일어났다. 서경식의 양친도 현대사의 거대한 흙탕물과 함께 휩쓸려 결국 일본이란 타지에 정착하게 된 것이지만 그런 흙탕물은 서경식의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덮쳤다. 서경식의 형들이 20대에 접어든 무렵은 박정희의 한일협정과 귀국운동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그의 형들 또한 스스로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강하게 찾기 시작하면서 일련의 활동들에 동참하게 되고, 결국 모든 과오를 반공정책으로 덮으려 했던 박정희 정권의 그물에 걸려 간첩단이란 누명을 쓰고 구속된다. 구속된 두 형은 옥중서한과 인권운동으로 지금은 잘 알려진 서승과 서준식이다. 이 사건이 그의 가족에게 어떤 충격이었을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서준식의 옥중서한과 서경식의 이 책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쓰라렸으나 맑았던 소년의 눈물은 이제 한과 고통이 담긴 청년의 눈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자주 언급되는 책은 루쉰의 저작들이다.